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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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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손으로 빚는 목가적 미감 (Dec 2024) 이재용은 장작 가마를 활용해 푸레 또는 꺼먹이 기법으로 ‘일상을 좀 더 풍요롭게 하는 작품’을 만드는 작가이다. 스스로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그는 최근 고대 토기의 형태를 본뜬 화분이나 화병, 주자 등의 기형을 선보여왔다. 오래된 형태를 다시 현대에 풀어내는 그의 작업은 일견 공예의 목가적postoral 미감을 연상시킨다. 문명의 태동기 혹은 그 이전부터 유구하게 존재해온 외형의 그릇을 주방 한 켠에 놓는 상상을 하면, 사라진 문화가 주는 “옛날”의 여운을 떠올리게 된다. 수작업의 느낌을 살려 고대의 기물을 새롭게 재해석하는 작가를 인천 잇다스페이스 전시장에서 만났다.이재용은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서 전통도자전공으로 진학해 처음 도자 작업을 시작했고, 2011년 학사 학위를 받았다...
김지호, 동물로 전하는 이야기 (Nov 2024) 김지호는 동물에게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고 이야기로 풀어내는 작가이다. 그는 관찰자이자 당사자의 시선으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물과 인간의 동질성을 기민하게 포착한다. 인간과 공존하는 동물은 원치 않게 정해진 좁은 공간을 배회하며 스트레스를 겪곤 한다. 때로 규격화된 틀에 자신을 맞춰야 해서 괴로워하기도 하고,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구애의 뜻을 담은 선물을 주고받기도 한다. 작가는 영상이나 신문 등의 매체를 통해 채집한 시선을 작품에 담아낸다. 동물의 외형을 빚고, 섬세하게 털 등을 그리거나 붙이고, 그 안에 동물이 꿈꾸는 자연을 상상하며 그려넣는다. 작가는 우연히 동물원에 갇힌 동물 영상을 보고 자신과 닮았다고 느낀 데서 동물을 주제로 한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스트레스를 받은 동물이 반복적으로 과잉 행..
조연예, 도자 정물로 그리는 풍경 (Oct 2024) 조연예는 정물화 이미지의 도자 작업을 통해 하나의 풍경을 만드는 작가이다. 그는 정물 하나하나에 자신을 투영해 빚어내고 소묘적인 터치를 더해 평면적인 질감을 구현한다. 일견 3D인 입체 작품을 2D 그림처럼 보이도록 섬세한 착시 효과를 연출하는 것이다. 그렇게 ‘그려진’ 도자기 하나하나는 놓이는 장소, 시간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을 만든다. 공간과 배치, 빛과 계절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살아있는 정물화인 셈이다. “도자 정물은 현실에서 특정된 고정적 위치를 갖지 않는다. 끊임없이 누군가에 의해 우연히 또는 자의적으로 정렬되고 재배치된다. 각각의 정물은 각각의 이야기, 각자의 존재감을 갖고 있다. 하나하나의 정물이 모여서 조화 또는 부조화를 이루고, 대상간의 관계와 감정을 담은 하나의 풍경이 된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Sep 2024) 올해 키아프리즈 기간에 북촌에 위치한 신생 공간 푸투라 서울이 문을 열었습니다. 개관전 레픽 아나돌 《대지의 메아리: 살아있는 아카이브》 이 9월 5일부터 12월 8일까지 열립니다. 기억의 해상도는 기술의 진보와 비례하는 걸까요? 디지털 아트가 현실 세계로 호명되는 순간, 필연적으로 열화될 수밖에 없는 아쉬움이 있는데요. 이를 최대한 해소한 듯 선명한 영상이 인상적인 경험이었습니다.  레픽 아나돌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감독입니다. 기계 학습 - 머신 러닝에 바탕을 둔 예술의 선구자로 잘 알려져 있죠. 1985년 터키 이스탄불 출생으로 현재 LA에 거주하며 레픽 아나돌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위 사진 속의 작품은 그의 대표작인 '기계 환각 - LNM' 시리즈입니다. 자연을 주제로 ..
류호식, 안온하고 평안한 집 (Aug 2024) 류호식은 페이퍼클레이를 사용해 안온하고 평안한 공간[Querencia]을 만든다. 그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아름다운 순간에서 주제에 대한 영감을 얻는다. 문득 마주치는 순간의 풍경을 사진 또는 스케치로 기록하고, 이를 보지 않고 마음의 눈으로 떠올려보며 다시 그린다. 삶에 위안이 되었던 순간을 상상으로 되짚어 가는 길. 그에게 작업 과정은 매 순간 눈으로, 마음으로, 손으로 이상향을 덧그리는 일이다. 여러 번 덧칠된 이미지는 당시의 감흥이나 정서만을 남긴 채 추상적이고 새로운 형태로 나타난다. 흙을 만지면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 수 있으면 행복할 거라는 마음가짐으로, 그는 경일대학교에서 도자를 전공하고 홍익대학교 대학원 도예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일찍부터 흙으로 무언가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어린이였던 ..
박래기, 물질을 들여다보는 힘 (Jul 2024) 박래기는 물질의 스펙트럼을 끈기있게 파고들어 그 이면을 들여다보는 작가이다. ‘Unveiled series’는 망간이라는 재료에 대한 탐구에서 시작됐다. 검은 색 유약의 원료 중 하나인 망간은 과포화되면 주름이 지거나 러스터와 같이 금속의 물성이 강조되는 성질이 있다. 작가는 망간을 사용해 표면이 매끈하게 마감된 브러시드 메탈(brushed metal)의 질감 또는 무쇠 주물처럼 보이는 러프한 질감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명료하게 보이는 재료의 특성, 그리고 그 너머의 도무지 보이지 않는 것을 추적하는 일련의 실험을 통해 하나의 물질은 비로소 새로운 이면을 드러낸다. 망간을 과포화시킨 유약은 고온에서 망간 결정이 석출된다. 결정은 일반적으로 유약의 용융도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는데, 작품에 적용된 유약은 ..
오세린, 삶의 아이러니와 서사 (Jun 2024) 오세린은 인간과 그 주변에서 발견되는 아이러니한 사건을 한 공간에 연출하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우리가 아는 것,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모르는 것,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의 경계를 넘나들며 작가는 사건에서 맥락을 제거한다. 가판대에 놓일법한 싸구려 악세사리를 뒤섞어 화이트큐브와 런웨이를 오가고(「모방과 속임수」 ), 3D 프린팅과 도자기를 결합해 게임 속에서나 볼 법한 가상의 물길을 버젓이 전시장에 구현하기도 한다(『숲 온도 벙커』). 기존의 서사와 맥락을 임의로 해체하고, 남겨진 이미지를 혼합하고 병치하는 방식으로 오세린은 사건에 새로운 서사를 부여한다. 먼 타국에서 건너와 한국에서 죽은 식물을 기리기 위한 신작 「이민자들」을 선보인 오세린을 논현동 전시장에서 만났다.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아레카야..
아네모이아, 우리의 데자뷰 (May 2024) (뉴스레터 『비지터씨 Visitor.see』를 통해 요약 발송한 원고의 전문입니다.)케이팝: 어디선가 본것 같은 우리의 데자뷰내 amemoia, 나의 미래는 너야  우린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참 많은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이 주제로 쓰는 모든 글은 사랑에 대한 글입니다. 그러니까, 연서戀書인 셈이지요. 무언가를 좋아하는 데는 셀 수 없이 많은 이유가 있지만 일단 오롯이 시각 미감 Visual Aesthetics에 대해 얘기하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예쁜 거요. 예쁜 걸 예쁘다고 말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첫번째 사랑 고백을 미술도 문학도 아닌 케이팝에 바칩니다. 예술도 자본의 선택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몸 안에서 돌며 핏줄을 타고 흐르고 체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