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비지터씨 Visitor.see』를 통해 요약 발송한 원고의 전문입니다.)
케이팝: 어디선가 본것 같은 우리의 데자뷰
내 amemoia, 나의 미래는 너야
우린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참 많은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이 주제로 쓰는 모든 글은 사랑에 대한 글입니다. 그러니까, 연서戀書인 셈이지요. 무언가를 좋아하는 데는 셀 수 없이 많은 이유가 있지만 일단 오롯이 시각 미감 Visual Aesthetics에 대해 얘기하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예쁜 거요. 예쁜 걸 예쁘다고 말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첫번째 사랑 고백을 미술도 문학도 아닌 케이팝에 바칩니다.
예술도 자본의 선택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몸 안에서 돌며 핏줄을 타고 흐르고 체화되어 심장을 벅차오르게 하고 눈에 반짝이는 필터를 씌운 듯합니다. 자본의 힘이 커지고 커져서 이제는 '돈으로 해결이 안되면 돈이 부족한 것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되는 세상입니다. 자본의 맛이 느껴지는 이미지를 보면 시선이 가요. 그 정점에 최근의 케이팝이 있습니다.
이미지가 폭력적으로 쏟아지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어떤 이미지는 다른 이미지보다 조금 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어떤 이미지는 연속성을 갖기도 하지요. 서로 닮기도 하고요. 자본을 통해 하나의 에스테틱 Aesthethic* 을 구축한 기획사들을 들여다보면 다양한 레퍼런스를 짜깁고 이전 세대와 다음 세대가 서로를 모방하며 발전해왔습니다. 오늘은 그 중 '경험한 적 없는 것에 대한 향수, 생경한 그리움'을 뜻하는 아네모이아 Anenoia 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살아본 적 없는 시공간을 그리워할 수 있을까
아네모이아Anemoia 는 존 케닉의 저서 『슬픔의 이름 붙이기 The Dictionary of Obscure Sorrows』(윌북, 2024)에서 등장하는 신조어로 경험해본 적 없는 시대에 대한 향수를 뜻합니다. 근래에는 1980-90년대 음악과 이미지를 일부러 조악하게 짜깁기하여 만든 베이퍼웨이브Vaporwave 현상으로 대표되는 하나의 장르가 되었죠.**
케이팝에서 이를 차용하는 방식을 하이브-빅히트뮤직-의 보이그룹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이번 4월 발매한 미니앨범 『minisode 3: tomorrow』의 타이틀곡 「데자뷰 Deja Vu」 뮤직비디오를 토대로 살펴보았습니다. 수증기를 뜻하는 베이퍼, 파도라는 뜻의 웨이브의 합성어인 베이퍼웨이브 이미지는 흔히 증기, 수증기, 부질없음, 망상, 물결, 흔들림 등의 이미지를 통해 몽상적이고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드러냅니다.
베이퍼웨이브 스타일의 대표주자로 종종 인용되는 데이비드 빈 부크하트 David Dean Burkhart가 작업한 2013-14년의 초창기 영상-Craft Spells의 「Nausea」 등-을 보면, 2024년 케이팝의 베이퍼웨이브는 당연히 더 세련되고 정제된 미감이라는 생각은 들어요. 그리움을 시각적으로 전이하기 위한 장치로 상업적 가치를 잃은 공터, 폐허와 같은 이미지에서 연상되는 '상실과 트라우마'를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데요. 「데자뷰」는 노래 가사에서부터 아네모이아라는 단어를 비롯해 폐허, 눈물, 왕관, 불꽃, 베일 등 관련 단어를 반복적으로 언급하고 이미지화하고 있습니다.
흐릿하고 빛나는 여성의 실루엣을 비롯해 특정 이미지가 곡이 끝날 때까지 여러 번 반복되는 것 또한 이러한 시각적 연출의 특징 중 하나죠. 내러티브와 무관하게 뒤바뀌거나 반복되거나 정지되는, 2024년의 자본주의에 의해 섬세하게 정제되고 연출된 장면들이요. 언뜻 과거 윈도우95 이후의 3차원 파이프 스크린 세이버가 떠오르는 철제 구조물, 마치 비디오 테이프의 원본이 늘어지거나 훼손된 듯 보이는 열화된 디지털 이미지의 번짐 효과는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데자뷰, 그리움의 정서를 극대화합니다.
상실한 것이 아니라 부재하는 것이다
어딘가로 이동하는 버스나 자동차 등의 움직임, 창문으로 비치는 수평적 이미지는 전형적인 그리움의 모티프입니다. 특정한 공간을 그리워하는 감정은 역설적이게도 떠남 또는 잃음을 통해서만 획득되는 개념이니까요. 수직적인 도시와 달리 수평적으로 넓게 펼쳐진 시골의 들판, 이를 내달리는 소년 또는 탈것의 이미지는 불안하고 위태로운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데자뷰」는 이에 더해 창문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창문의 안과 밖은 물리적으로 단절되어 있지만 시각적으로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창문 바깥의 세상은 때로 완전히 이질적인 그림같은 구름으로 채워져 마치 꿈처럼 연출 되기도 하고, 좀더 사실적이고 일상적인 구름의 형태를 보여주며 현실로 공간을 이동시키는 매개가 되기도 합니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이미지들이지만 내가 실제로 겪지는 않은, 시공간을 특정할 수 없는 각각의 요소들은 느슨하게 병치되어 한 덩어리의 환상 또는 가상의 서사를 구축합니다. 사실 현대사회에서는 공통의 문화를 경험하는 일이나 공동체의 기억이 거의 없긴 합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다이나믹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 나와 내 이전세대 또는 내 이후세대의 기억은 거의 같은 지점이 없습니다. 심지어 하루의 대부분을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를 보면서 지내는 시간도 많은데, 이러한 간접 기억은 오히려 생생하게 파편화 되어 우리의 삶을 채우고 있죠. 우리는 이제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존재인 것 같아요.
문화와 미디어를 통해 경험한 적 없는 것들로 채워진 '집단 기억(보철 기억)'이 불러일으키는 그리움은 사실 상실한 것이 아닌 부재하는 것이죠. 무엇을 잃어버린 지도 모른채 상실감이 일상이 된 세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그리워하고 있는 걸까요. 어쩌면 이 아득한 장면 속에서 우리는 지금의 내가 잃어버린 것을 떠올리고 성찰하고 있는지도요. ◆
그리움은 이 시대의 가장 큰 산업이다. 사회, 문화, 정치 전반의 영역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대부분이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감정과 연결된다. 소셜 플랫폼은 과거의 빛나는 순간을 오늘의 트래픽과 교환하고 아이돌 그룹은 지난 세기 팝 문화의 유산을 상속하기 위해 경쟁한다. 정치인의 선거 전략은 좋았던 시절을 거듭 회고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그리움이 현실을 지배하는 유력한 감정이며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사업 전술이 되었음을 알려준다.
- 『포에버리즘: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 전시 서문, 일민미술관
*앞서 미감을 지칭하는 보통명사로서의 에스테틱 Aesthetics 이 아닌, 특정 스타일의 공통된 요소나 범주를 가리키는 좁은 의미로서 인터넷 문화에서의 하위 장르를 지칭
**위의 내용 분석은 이하림의 논문 「생경한 그리움: 경험한 적 없는 것에 대한 노스탤지어와 잔재의 이미지」(『미디어, 젠더&문화』, 2020)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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