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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강민성, 21세기의 달항아리 (Mar 2024)

한국의 미를 대표하는 미술품으로 여겨지는 달항아리는 우리의 삶에 친숙하게 자리잡았다. 최근 할인마트나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마음만 먹으면 집집마다 달항아리 하나쯤 둘 수 있는 세상이다. 곳곳에서 우연히 마주한 달항아리는 기계로 빚어진 듯 좌우 대칭이 완벽에 가깝게 둥그렇고 풍만하다. 사실 이쯤 되면 우리는 18세기 조선에서 만든 달항아리라기보다 21세기에 재생산되고 있는 달항아리-이미지를 소비하는 셈이다. 

 


여기, 21세기의 달항아리를 만들고자 하는 남자가 있다. 강민성은 21세기에는 그에 맞는 달항아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기존의 달항아리와 다른 다양한 재료의 ‘결합’을 시도해왔다. 전통적으로 두개의 발 형태를 ‘결합’하는 형식으로 만들어지는 비정형적인 선의 아름다움은 작품의 중심이 된다. 여기에 다양한 재료의 치환과 혼합을 바탕으로 현대적인 미감을 더함으로써, 강민성의 달항아리는 옛 것을 배워 새롭게 한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과거-현재로 흐르는 시간
강민성은 남서울대학교에서 환경조형학을 전공하며 유리, 도자, 금속과 같은 다양한 재료와 물성에 대한 경험을 쌓았다. 학부 졸업을 앞두고 ‘재료는 내가 하고 싶은 표현을 위해 쓰는 수단’으로 보는 조소와 ‘재료별 기법과 장인정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예 사이에서 고민하던 중, 흙의 가소성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 커졌다. “주무르는대로 원하는 모양이 나오는 흙의 성질이 좋았어요.” 그렇게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도예과 석사 과정에 진학해서 본격적으로 흙을 다루는 법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석사 과정에서 달항아리를 만들기 시작한 뒤 떠오른 의문은, 달항아리를 만드는 행위 자체에 대한 질문이었다. “과거에 달항아리를 만들었던 도공보다 더 잘만들 수도 없었고, 동일하게 만들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선시대부터 사용했던 물레와 흙 외에도, 현대에는 많은 재료로 새로운 달항아리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기존의 것과 다른 현대적인 달항아리를 구상하기 시작할 때, 많은 재료를 다뤄본 그의 경험은 자유로운 상상력의 바탕이자 새로운 시도의 밑거름이 되었다.

강민성에게 달항아리의 주 재료는 도자일 수도 있고, 금속일 수도 있고, 아크릴일 수도 있다. 상하부를 각각 도자와 유리로 제작할 수도 있고, 평면과 입체를 이어붙일 수도 있고, 입구나 굽 부분을 유리로 만들어 붙일 수도 있다. 그는 주로 라미네이팅 기법을 활용해 강화유리를 워터젯으로 커팅해 연마한 뒤 에폭시로 접합한다. 이때 에폭시에 안료를 사용해 조색해서 다양한 색을 내기도 한다. 최근에는 도자를 만들 때 다양한 색의 흙을 사용하는 등 색채의 미감을 계속 탐색하고 있다.

 



현재-미래로 흐르는 시간
경쾌하고 발랄한 강민성의 달항아리를 보고 있으면, “나는 행복을 안고 갑니다”라고 말한 버나드 리치(Bernard Leach, 1887-1979)의 마음을 새삼 이해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상하로 분할된 단면을 유리로 가로지르며 그 이음새를 두드러지게 드러낸 낯선 달항아리는 새삼 익숙해져서 잊고 있었던 백자 항아리의 아름다움을 다시 보게 만든다. 그가 과거로부터 받은 영감을 현대적으로 풀어냈듯이, 현재는 미래에 또다른 과거이자 전거典據가 될 것이다. ‘시간성’은 지난 수 년간 그의 작품을 관통하고 있는 주요한 주제이다. 

시간성을 시각화하기 위해 그는 다른 여러 가지 재료를 활용한다. <Military Silver>라고 명명한 달항아리 시리즈는 문자 그대로 ‘은칠'을 했다. 은은 공기를 만나 색이 달라지면서 시시각각 다른 색으로 변화한다. <Flower moon>은 아크릴과 도자로 만든 달항아리 안에 실제 생화를 넣어 완성된 형태로 전시한 작품이다. 그림으로 그린 듯 싱싱했던 꽃은 공기와 접촉하며 공간의 온도와 습도에 영향을 받는다. 이는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고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결과물로서 곧 우리 삶의 모습을 투영하는 매개체가 된다. 

나아가 작년부터 강민성은 아트 퍼니처로 작업 영역을 확장해 현대적인 소반을 제작하고 있다. 계속해서 전통의 재해석을 시도해온 그에게 소반은 전통과 현대의 만남을 보여줄 수 있는 또다른 대상이다. “‘공간속의 달’은 소반을 재해석해 만든 브랑쿠시에 대한 오마주에요. 제목도 브랑쿠시의 작품 중 ‘공간속의 새’에서 따왔죠. 좌대도 작품의 일부라고 말한 브랑쿠시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어요.” 소반을 현대적으로 변용해 좌대의 기능을 부여함으로써 문자 그대로 ‘좌대는 작품의 일부’가 된다. 

다시, 지금 여기의 시간
“멋있는 거 만들고 싶고, 멋진 사람이 되고 싶어요.” 강민성은 작업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하고, 항상 배우는 자세로 작업에 임한다. 주변의 재료와 익숙한 기법이 만나 새로운 시각적 조합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유리 작업 등의 경우 절반은 깨져나갈 때도 있지만, 다작多作을 바탕으로 많은 실패와 많은 성공을 통해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2020년 스튜디오를 차린 뒤 4년차에 접어든 그는 코로나 엔데믹 선언이 있었던 작년 그리고 올해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지난 1월 대만에서 열린 ‘ONE ART TAIPEI’ 아트페어에서 작품을 선보였던 그는 2월에는 일본 교토 JARFO ART SQUARE에서 열리는 <Ornament Ceramic> 전시에 참가할 예정이다. 한국에서는 부산 오브제후드에서 3월 17일까지 열리는 <일상의 온도> 전시에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스스로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그는 어김없이 작업으로 가득 찬 일상을 소화하는 중이다. 공예의 개념과 영역을 끊임없이 자문하고 확장해나가는 그는 자신만의 길을 명확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김기혜 독립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