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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윤정선, Elemental (Oct 2022)

나는 부츠와 모자에 고향concord의 흙을 넣어서 다닌다. 나 또한 콩고드의 흙으로 만들어진 사람이 아닌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

 

완전한 인물에서 다시 흙으로

매일 아침 같은 길을 걷는다. 동일한 길 위에서 보는 풍경도 매 시간, 매 계절 달라진다. 작가는 그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길에서 마주하는 꽃, 사물, 동물, 인간, 그 속에서 자연을 이루는 원소element와 같은 추상적이고 작은 단위를 떠올린다. 원소는 자연의 한 부분일 수도 있고 인간의 한 요소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형태는 바뀌더라도 근본적으로 원자와 같은 하나의 작은 단위-덩어리로 구성되어 있다는 생각에서 전시는 출발한다.

 

‘Lump of clay’로 대표되는 일련의 두상(또는 흉상)들은 뭉뚱그려진 인물과 흙 덩어리의 경계에 있다. 표정이 불명확한 얼굴을 뒤덮은 금채 또는 흘러내리는 유약, 마치 머리카락처럼 비대칭적으로 툭툭 덧대어진 흙은 중력을 고스란히 받고있는 듯 때로는 거슬러 생장하는 듯 무게와 형태의 균형을 이룬다. 작가의 감정이 남아있는듯 오묘한 표정을 띠다, 마치 초월자의 얼굴처럼 우리 자신의 감정을 투영하는 듯하다.

 

‘Innerchild’는 인물 중에서도 아이의 얼굴을 하고 우리를 바라본다. 그들 또한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지만, 우리는 아이들이 금새 활짝 웃거나 울음을 터뜨릴 거라는 막연한 연상을 한다. 아이에게는 아이만의 무해하고 순수한 세계가 있다. 갓 구워진 백자처럼 보얗고 하얀 얼굴은 그 누구보다 가장 자연-흙에 가까운 존재로 살아있고 열려있다.

 

 

전시대에 함께 놓여진 ‘untitled’는 보다 다른 어떤 것보다 친숙하고 풍부한 표현 가능성을 지닌흙에 가까워진 작업이다. 흙이라는 재료에서 느낄 수 있는 물성, 양감, 손으로 쥐어가며 만드는 형태, 덧대어지는 색채와 유약들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마치 일련의 두상들이 흙에서 시작해 흙으로 돌아갈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소녀의 머리에 얹힌 리본과 사과, 꽃과 브로콜리로 등으로 이루어진 식물다발과 같은 ‘Garden’ 연작은 전시장에 생기를 더한다.

 

작품의 형태를 이루는 작은 원소들은 흙덩어리가 될 수도 있고 캔버스 위의 물감이 될 수도 있다. ‘spring’, ‘summer’, ‘winter’, ‘forewalk’와 같은 전시된 화폭을 따라 걷다 보면 그 안에 작가의 눈으로 본 계절이 있고 자연이 있다. 구상과 추상을 잘라 말하기 어려운 덧칠된 물감, 그 위로 더욱 두껍게 덧칠된 듯한 도자 조각이 평면과 입체의 경계를 가로지른다. “다양한 감각의 경계 사이에서 세상을 바라보려 하는 작가의 눈으로 보면 매년 돌아오는 계절도 새롭게 보인다.

 

윤정선 <Elemental> 전시글

2022.10.7~10.29 @스페이스1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