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은 장작 가마를 활용해 푸레 또는 꺼먹이 기법으로 ‘일상을 좀 더 풍요롭게 하는 작품’을 만드는 작가이다. 스스로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그는 최근 고대 토기의 형태를 본뜬 화분이나 화병, 주자 등의 기형을 선보여왔다. 오래된 형태를 다시 현대에 풀어내는 그의 작업은 일견 공예의 목가적postoral 미감을 연상시킨다. 문명의 태동기 혹은 그 이전부터 유구하게 존재해온 외형의 그릇을 주방 한 켠에 놓는 상상을 하면, 사라진 문화가 주는 “옛날”의 여운을 떠올리게 된다. 수작업의 느낌을 살려 고대의 기물을 새롭게 재해석하는 작가를 인천 잇다스페이스 전시장에서 만났다.
이재용은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서 전통도자전공으로 진학해 처음 도자 작업을 시작했고, 2011년 학사 학위를 받았다. 학부 때는 이태호, 이강효, 이인진 등 무유 작업과 분청 작업을 하는 작가를 많이 연구했고 하나의 모델로 삼았다. “손으로 만든 느낌이 살아있는 작업, 자연스럽고 ‘대충’ 만든 느낌을 주는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장작가마를 나름대로 연구하면서 태토에서 철분을 어떻게 하면 더 진하게 끌어낼 수 있을지 생각하다 보니 무유나 자연유 쪽으로 관심을 갖게 됐다.
주로 사용하는 꺼먹이 기법과 푸레 기법은 학부 시절 배연식 작가로부터 배웠다. 불을 때다가 가마를 다 막으면 탄소가 침투되면서 검게 변하는 것이 꺼먹이 기법이다. 여기에 일제강점기 즈음 들어온 소금유 기법, 소금을 쳐서 표면을 유리질화 시키는 방식과 결합하면 푸레 기법이 된다. “일부러 배우려고 찾아다니면 기회가 없다시피 했겠지만, 저는 학교에서 푸레번조기법을 배웠어요. 운이 좋았죠.” 4학년 때 졸업 작품을 준비하면서 오름가마와 통가마, 학교 가마 두 개를 각 두 번씩 네 번 때기도 했다. 장작값을 생각하면 학교는 공짜로 다닌 것과 마찬가지였다고 그는 말한다.
학부 졸업 후에는 여러 진로를 놓고 고민하던 중, 일본과 제주도를 오가며 장작가마 경험을 쌓았다. 일본과의 인연은 졸업 후 2년 정도 학교 조교로 근무하던 당시, 전통대에 레지던시 차 방문한 나카자토 타카시 작가에게 통역 등 도움을 주면서 시작됐다. 방학 때 작가와 함께 일본을 방문했다가, 모리오카 시게요시 선생을 만나게 됐다. 이 때의 인연으로 일본 모리오카 시게요시 공방에 일 년에 서너 번씩 방문해 불 때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한 번에 열흘에서 보름을 불을 땠고, 재임부터 작품을 꺼내기까지 근 한달이 걸렸다. 기다리는 동안 이야기를 나누며, 작가의 길을 가겠다는 결심이 섰다.
“작업의 롤모델은 있었는데, 삶의 롤모델이 없었어요. 모리오카 시게요시 선생님이 제가 생각했던 삶의 많은 면을 가지고 있었어요. 가령 좋은 그릇을 만들고, 많은 사람들이 쓸 수 있게 하는 것이요. ‘컵 하나에 5~60만원 씩 하면 사람들이 안 쓰고 모셔놓는다. 가격이 좀 싸야 편하게 쓰고, 깨지기라도 하면 새로 사러 올 것 아닌가.’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기후와 흙을 경험하는 삶, 어쩌면 도예라는 작업이 빡빡한 취미생활 처럼 이어지는 삶이 좋아 보였어요. 행복하고 즐겁게 사는 것, 그렇게 작업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일본을 오가던 즈음 도록을 보고 제주 옹기에 관심이 생겼다. 제주도 옹기 유물을 보면 특유의 은은한 텍스처와 불 지나간 자국이 조화를 이룬다. 이를 주된 작업 요소로 활용하고자 제주도를 다니기 시작하였고 수 년간 겨울이 되면 몇 개월씩 제주도에 머무르며 가마축조 등 제주옹기 보존·복원 활동에도 참여하기도 하였다.
이후 오키나와에 장작가마 무유 작업이 남아있는 것을 발견하고 찾아가보기도 하고 중국의 전통 도자기와 가마터 답사도 다녔다. 이런 과정에서 고고학·미술사학적 관련 지식에 갈증이 깊어져 충북대 미술사학과에서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궁금한 게 많아서 공부를 시작한 셈인데, 하다보니 작업에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됐다고 그는 말한다.
차곡차곡 쌓아온 경험을 토대로 그는 한국에서 장작가마를 짓고 작업을 시작했다. 이재용이 만드는 그릇, 기형들은 대체로 개인적인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일례로 2021년에 술 그릇을 만들었던 것은 술을 좋아하는 작가가 쓸만한 술 그릇을 만들고 싶은 욕심에서 시작됐다. “한 10년 사이에 새로운 전통주 양조장이 많이 생겼잖아요. 상응할 만한 그릇 작업들이 나와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술자리의 분위기를 다채롭게 만들 수 있는 다양한 형태와 색감, 질감이 있는 그릇을 만들고 싶었다. 도예가의 그릇은 필수품이라기보다 사치품에 가까운 만큼, 자신이 추구하는 미감과 물성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로 구매하는 것 같다고 그는 덧붙였다.
“가장 좋아하는 기형은 항아리에요. 만드는 것 자체가 재밌고, 마음에 안정을 줘요. 좋아하는 표현은 아니지만, 자기 치유적인 역할을 한달까요.” 가야 토기의 모양을 본뜬 항아리나, 최근 전시한 닭모양의 계수호鷄首壺 작업도 말 그대로 ‘만들고 싶어서’ 만들었다. 작업을 하다보면 용도와 형태의 한계에 부딪치기 쉬운데, 그는 하나의 스타일에 갇히지 않고 계속해서 작품 세계를 확장해나가는 중이다. 현재는 공간적 한계로 장작 가마에서 꺼먹이 작업을 주로 하고 있다. 내년은 계획한 대로 회화 작가와의 콜라보를 작업해보고 싶다고, 아직도 만들고 싶은 게 많다고 그는 말한다.
“산을 오를 때 정해진 길을 빠르게 오르는 사람보다, 길 만드는 것에 미쳐있는 사람들, 스스로 루트를 개척해 나가는 사람들이 제 롤모델이에요. 저는 제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 데 상대적으로 관심이 없어요. 오히려 아마추어적인 태도가 더 가치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만들어서 내가 쓰고 먹고 살 수 있는 정도를 지향합니다. 그 이상의 욕심은 작품활동 외에 다른 활동으로 풀어보고 싶네요.” 앞으로 물레 작업을 더 잘하고 싶다고 말하는 작가의 태도는 그의 작품이 갖는 외형만큼이나 자연스럽고 단순하고 직설적이다. 자신의 길에서 꾸준히 새로운 작업을 만들어나가는 이재용의 향후 행보를 기대해본다.
김기혜 독립 큐레이터
월간도예 2024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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