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예는 정물화 이미지의 도자 작업을 통해 하나의 풍경을 만드는 작가이다. 그는 정물 하나하나에 자신을 투영해 빚어내고 소묘적인 터치를 더해 평면적인 질감을 구현한다. 일견 3D인 입체 작품을 2D 그림처럼 보이도록 섬세한 착시 효과를 연출하는 것이다. 그렇게 ‘그려진’ 도자기 하나하나는 놓이는 장소, 시간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을 만든다. 공간과 배치, 빛과 계절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살아있는 정물화인 셈이다.
“도자 정물은 현실에서 특정된 고정적 위치를 갖지 않는다. 끊임없이 누군가에 의해 우연히 또는 자의적으로 정렬되고 재배치된다. 각각의 정물은 각각의 이야기, 각자의 존재감을 갖고 있다. 하나하나의 정물이 모여서 조화 또는 부조화를 이루고, 대상간의 관계와 감정을 담은 하나의 풍경이 된다. 완성된 풍경은 사물과 사물의 관계일 수도, 혹은 사람과 사물의 관계, 사람과 사람의 관계일 수도 있다. 입체적이면서 동시에 평면적인, 불완전한 정물은 하나의 풍경 속에서 비로소 안정적인 구성을 이룬다.”
조연예는 정물의 대상을 자신의 삶 속에서 탐색한다. 똑같은 작품도 어떤 시공간에 놓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듯 사람도 그렇다고 작가는 말한다. “어떤 공간에 가고,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나’도 달라지고 작품도 바뀌는 것 같아요.” 초기에는 세잔 등 서양의 전형적인 정물화를 참고했다면, 이후에는 한국의 미를 담은 한국의 정물화를 만들자는 생각으로 작업하기도 했다. 유럽에 다녀온 뒤 영감을 받아서 새로운 기형이 작품에 등장하기도 한다.
무채색 계열의 화병이 겹쳐진 풍경, 곳곳에 꽃이나 과일이 놓인 모습은 정물화의 대표적인 형태이자 작가의 작업에서 가장 많이 연출되는 한 폭이다. 꽃과 잘 어울리는, 목이 길거나 손잡이가 있는 형태의 화병 종류를 다양하게 작업하다 보니 널리 사랑받는 연작이 됐다. 정물화의 대표적인 소재인 사과를 비롯해 배, 포도, 솔방울 등 열매류도 초기부터 꾸준히 만드는 사물의 하나이다. “식기류로는 에스프레소 잔, 와인잔 등 컵을 애용해주시는 것 같아요. 소중하게 다뤄주시고 아껴주시는 모습을 보면 기쁘죠.”
예술 고등학교를 졸업한 조연예는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도예를 시작했다. 조소 수업 등을 통해 흙을 만져본 적은 있지만, 흙으로 형태를 빚고 가마에 넣어서 구워 도자기를 완성하는 일은 또 다른 경험이었다. 그는 학부시절 사용성과 기능성을 중심으로 작업하는 것보다 기형의 심미적이고 색다른 형태와 관계를 탐색하는 데 매력을 느꼈다. 이때부터 도자기와 도자기의 결합에 흥미를 느끼고, 컵과 컵 손잡이의 관계처럼 그릇의 일부에 또다른 그릇의 조형을 기능적으로 부착하는 방식 등으로 형태를 실험했다.
석사 과정에서 도자기의 표면에 소묘의 선을 넣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에서 시작됐다. 고등학교 때부터 소묘를 좋아했던 작가는 기억을 되살려 기의 표면에 연필의 느낌을 반영한 작업을 시도해보게 됐다. 처음에는 외곽에 살짝 스케치한 듯 선을 더했다면 이후 다양한 유화와 같은 색이나 직선과 곡선, 점묘 기법 등을 다양하게 차용해보았다. 3차원의 형태에 2차원의 느낌을 구현하기 위한 다양한 재료를 연구한 결과, 최종적으로 현재와 같은 연필선이 뚜렷한 작업의 형태를 완성하게 됐다.
작업 방식은 기본적으로 초벌된 상태에서 세라믹 펜슬을 사용해 페인팅을 한 뒤, 투명한 계열의 유약을 입히고 재벌해 완성한다. “이전부터 평면에 그림을 그린다던지 디테일하게 묘사를 하는 것에 재미를 느꼈는데, 도자 정물 작업을 통해 제 장점을 잘 살리게 된 것 같아요.” 올해 그림을 그릴 계획도 있었는데, 일상에서 작업을 할 시간이 많지 않아 아쉬웠다고 덧붙였다. 졸업 후 결혼과 출산, 육아와 출강 등으로 바빠진 일상 속에서도 그는 틈틈히 작은 형태의 정물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부부 도예가로서 조광훈 작가와 연을 맺은 조연예 작가는 이천과 남양주를 오가며 작업 중이다. 같이 미술관을 다니며 취향을 공유하기도 하고, 서로 작업 아이디어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도 하는 일상이 무척 즐겁다고 그는 말한다. 조연예 작가의 작품은 현재 프린트베이커리와 수이57아뜰리에에서 만날 수 있다. 선선해지는 계절의 초입, 올해 계획한 일들을 모두 이루지는 못했지만 조연예는 새로운 전시를 준비 중이다. 연말 개인전을 시작으로 내년에는 조금 더 규모 있는 작품, 조형과 설치로 이어질 수 있는 작업에 도전해볼 계획이다. 새롭게 만나게 될 조연예의 작업을 기대해 본다.
김기혜 독립큐레이터
월간도예 2024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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